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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은 28일 광화문광장에서 ‘장애인도 아이를 낳고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라’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인천에 사는 중증장애인 부부 오명진 씨(42세, 뇌병변장애청각장애 중복 1급)와 신지은 씨(34세, 뇌병변장애 1급)는 지난해 11월 27일 아이를 출산했다. 그러나 출산과정부터 녹록지 않았다. 산모가 중증장애인에다가 몸이 많이 아프다는 이유로 병원들이 진료조차 거부한 것이다. 부부는 ‘낙태와 출산’이라는 두 선택지 앞에서 수개월을 고민했지만 결국 출산을 택했다. 그러나 고민해야 할 것은 또 있었다. ‘한 달 80시간, 6개월’밖에 지원되지 않는 ‘활동지원 출산가구 추가급여’ 신청 시기였다. 언제 진통이 올지 모르는 산모를 위해선 최대한 빨리 신청해야 했지만, 태어날 아이를 위해선 최대한 늦춰야 했다. 결국 부부는 아이가 태어난 지난해 11월 급여 신청을 했고, 다음 달로 지원은 끊긴다.
 

문제는 이후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현재 한 달 80시간 추가 지원에도 아이 돌봄 시간이 부족해 본인들의 활동보조 시간을 낮과 밤으로 나눠서 아이 돌봄에 쓰고 있다. 그러다 보니 본인들의 사회생활도 크게 제약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달 80시간마저 끊기면 이젠 밤에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 부부는 각각 한 달에 480시간의 활동지원 시간을 받고 있다.
 

신지은 씨 고민 끝에 이들은 현재 받는 양육수당 20만 원을 포기하고, 아이돌봄서비스를 신청하기로 했다. 아이돌봄서비스와 양육수당은 함께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아이돌봄서비스 종일제를 이용하면 한 달 최대 200시간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단, 한 달에 50~60만 원에 이르는 자부담비를 내야 한다. 이제 부부는 기초생활수급비 절반가량에 달하는 돈을 아이돌봄을 위한 비용으로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당사자의 마음은 어떨까. 신 씨는 막막함을 호소하며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우리나라가 원망스럽다”고 토로했다.
 

“장애인도 아이를 낳아서 키워야 하는데 왜 이렇게 사람을 궁지에 모나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남들 돈이라도 뺏어오고 싶은 심정이에요. 장애인은 아이를 갖지 말라는 건가요? 활동보조 24시간 지원하는 걸 없앴으면, 다른 혜택이라도 주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결국 부부는 다섯 달 된 갓난아기와 함께 2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섰다. 이들은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 등과 함께 ‘장애인도 아이를 낳고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라’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현재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8조 1항엔 “누구든지 장애인의 임신, 출산, 양육 등 모·부성권에 있어 장애를 이유로 제한·배제·분리·거부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는 장애인이 아이를 낳고 살아갈 ‘당연한 권리’를 뒷받침해주는 지원체계는 전무하다.
 

이들을 지원해온 이소망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복지부 활동지원사업안내 지침엔 6살 미만 아이에겐 활동보조인이 양육보조를 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이 있다. 하지만 현재엔 활동지원 출산가구 추가급여로 나오는 80시간밖에 없다”면서 “장애인재단, 시청, 구청, 동사무소에 문의해봤지만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한다. 가이드북을 봐도 장애출산 가구에 대한 지원체계는 없다. 고작 출산장려금 100만 원 주는 게 전부”라고 설명했다. 신지은 씨는 장애와 각종 질병으로 많은 의료비가 들었지만, 여성장애인에게 지급되는 출산장려금 100만 원밖에 지원받지 못했다. 

(왼쪽) 김민정 새벽지기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오른쪽) 모경훈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판 활동가  


이날 기자회견엔 양육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중증장애인 당사자들이 참여해 고충을 토로했다. 이들 모두 지원체계의 부족으로 자신의 활동보조시간을 아이 양육 시간으로 돌려쓰고 있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어려우면 사실상 아이 양육을 포기해야 했다.
 

새벽지기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으로 활동하는 김민정 씨에게도 다섯 달 된 갓난아기가 있다. 그러나 김 씨 역시 지원받을 수 있는 체계가 없어 친정에 아기 돌봄을 맡기고 있다. 김 씨 부부는 현재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
 

“최저임금 조금 넘는 센터 임금으로 집세 내고 아이 키우는 건 쉽지 않습니다. 한 달에 활동보조 290시간 받는데 센터 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쓰기에도 부족해요. 이 시간을 아이 양육에 쓰려면 일을 포기하고 아이와 함께 집에 있어야 합니다. 주말이면 아이 보러 친정엄마한테 가요. 아이를 보고 또 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엄마가 나 하나 키우는 것도 힘들었을 텐데, 지금 아이까지 떠맡기니 엄마한테도 너무 죄송하고요. 다음 달에 엄마가 백내장 수술을 해요. 좀 쉬어야 할 텐데 5개월 된 아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안 나옵니다.”
 

‘부성권’에 대한 목소리도 이어졌다. 모경훈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판 활동가는 19개월 된 아이를 양육하고 있다. 뇌병변장애 1급의 모 씨는 현재 500시간 남짓의 활동보조 시간을 받고 있다. 그러나 센터 출근을 하고 나면 집엔 아이와 아내 둘만 남는다. 모 씨 아내 또한 언어장애와 뇌병변장애 중복 2급으로 현재 활동보조 100시간가량을 받고 있지만, 아내의 시간만으로는 어린 아이를 돌볼 수 없다. 결국 하루에 6시간가량은 아내와 아이 둘만 집에 있게 된다. 모 씨는 “그 시간에 무슨 일이 생기면 대처할 방법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모 씨는 “아이가 넘어져도 일으켜 세워줄 수가 없다. 과연 내 아이가 나를 아빠라고 생각하고 있을까.”라면서 “당당한 남편이고 아빠이고자 한다. 그런데 그렇게 살지 못하게 하는 이 정부가 원망스럽다.”고 토로했다.
 

모 씨는 경제적 어려움도 호소했다. 모 씨는 “한 달 수입이 130만 원 조금 넘는다. 아이가 크면 양육비용이 더 많이 들 텐데 현재 적금도 들지 못한다”면서 “차상위계층이라도 되고 싶었는데 차상위 기준보다 수입이 고작 2만 원이 더 많아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장애인 모·부성권 보장을 촉구하는 사람들

이날 박김영희 장추련 상임대표는 현재처럼 활동보조인이 아동 양육까지 맡게 될 경우, 서비스를 당당히 요구해야 하는 장애인 이용자와 활동보조인 간의 관계가 변질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김 상임대표는 “활동보조 입장에선 활동보조하러 갔는데 생각지도 않은 아이 양육까지 맡게 되고, 장애여성 입장에선 자기애를 돌봐주는 활동보조인에게 싫은 소리를 할 수 없게 된다.”면서 “나이와 상관없이 활동보조인은 ‘엄마’나 ‘이모’가 되어 장애여성을 가르치게 되고, 장애여성은 엄마가 아닌,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아가게 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박김 상임대표는 이 문제는 단지 활동보조 시간을 몇 시간 확대해달라는 요구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박김 상임대표는 “아이 양육에 대한 비전문가인 활동보조인이 아이를 돌보는 게 아니라, 아이 양육을 전문적으로 하는 보육사를 장애가 있는 부모에게 파견해야 한다”면서 “아이와 부모와의 관계를 잘 개선해주고, 아이와 함께 이 세상을 동등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부부를 지원할 수 있는 사람의 파견을 요구해야 한다. 장애여성도, 장애남성도 부부가 될 권리가 있다.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