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기어오르며 “장애인 복지예산 확대하라” 절규했지만… 무참히 진압당해
등급제 ‘진짜’ 폐지 위한 예산 확대 촉구하며 조달청 기습 점거
휠체어 이동 가능한 경사로 막아 계단 기어 올라… 활동가 1명 현장 연행
등록일 [ 2019년06월27일 22시02분 ]
“10시간이나 기다리며 ‘만나 달라, 우리 이야기를 들어달라’ 외쳤지만, 기획재정부(아래 기재부)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기재부 직원 누구도 나오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장애등급제가 폐지되는 7월 1일 활동지원시간이 떨어지면 우리 장애인은 시설에 갇혀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 시설에 갇히고 싶지 않다. 당신들도 갇혀보라는 의미로 투쟁을 벌였다. 그대로 퇴근하면 우리 목소리를 누가 전달해주겠나!” (박현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대외협력실장)
장애인들이 실효성 있는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예산 확대를 요구하며 서울지방조달청을 기습 점거하고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면담을 촉구했다. 서울지방조달청에는 기재부 서울사무소가 있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아래 한자협) 소속 활동가들이 27일 오전 7시 30분경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조달청을 기습 점거했다. 그러나 경찰에게 막혀 건물 안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본관 정문 앞을 점거했다. 점거 과정에서 경찰이 계단은 열어둔 채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이 접근 가능한 경사로만 막아서서, 장애인 활동가들은 휠체어에서 내려 계단을 기어 올라가야 했다.
오후 5시경, 활동가 40여 명은 차량 통행 길목을 막아서는 퇴근 저지 투쟁을 다시 벌였다. 이 과정에서 장애인 활동가들과 경찰의 물리적 충돌이 거세지자 비장애인 활동가들이 이를 말리기 위해 개입했지만, 오히려 경찰에 의해 사지가 들려 끌려 나와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기도 했다. 또한, 경찰은 장애인들의 화장실 출입조차 막아서기도 해 향후 인권침해 논란이 예상된다. 한 비장애인 활동가는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방배동 경찰서로 연행됐다.
문애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7월 1일부터 시행하는 장애등급제 폐지가 엉터리니 제발 제대로 시행할 수 있게 예산 반영해 달라’며 홍남기 기재부 장관에게 면담을 요청하러 왔다. 하지만 경찰들은 폭력적으로 사람들을 밀어내고 끌어내렸다”라며 현장 상황을 전했다. 이어 “나 또한 여러 차례 여경에게 무참하게 계단 밑으로 끌려 나오고, 올라가면 또다시 끌려 나와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됐다. 하지만 몸이 만신창이가 된 것보다 마음이 너덜너덜하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현재 한자협 측이 요구하는 것은 대대적인 장애인 복지예산 확대다.
다음 달 1일부터 장애등급제가 일상생활영역(활동지원, 장애인거주시설, 응급알림, 보조기기)부터 단계적으로 폐지된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수요자 중심의 장애인 지원체계 구축방안’ 브리핑에서 “내년도 장애인 예산은 올해보다 5200억 원(약 19%) 증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올해 장애인복지예산이 작년보다 23% 증가한 수준에도 못 미치는 정도다.
이들은 “이는 기존의 장애인예산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서비스) 대상 증가에 따른 자연증가분일 뿐이며 장애인 개개인의 삶을 변화시킬 예산은 아니다. 약간의 증액은 기존 정부에서도 있었던 수준에 불과하다”면서 “이 모든 것은 결국 예산 문제인데, 돈줄을 쥐고 사회적 약자들을 철저하게 ‘시혜적 대상’으로 취급하는 기재부 관료들의 태도가 ‘31년 만의 의미 있는 변화’에 가장 큰 장벽”이라고 질타했다.
현재 한자협 측은 ‘진짜’ 장애등급제가 폐지가 이뤄지려면 올해보다 총 2조 1544억 원가량의 예산이 증액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요 요구안만을 보면, 활동지원서비스 예산 관련해서는 △대상자 8만 1000명→10만 명으로 확대 △월평균 지원시간 109시간→150시간으로 확대 등을 위해 올해보다 9948억 원이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장애인연금 관련해서도 △대상자 중복 3급→3급까지 확대 △기초급여 30만 원으로 일괄 확대를 요구하며 8412억 원 증액을 촉구했다.
이들은 28일 오후 2시에 서울지방조달청 앞에서 규탄대회를 열 예정이다.
박승원 기자 wony@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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