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선 빈곤 문제, 내년도 기준 중위소득 결정 앞두고 ‘대폭 인상’ 촉구
기준 중위소득 3년간 평균 인상률 1.66%… 과거 최저생계비 인상률의 절반
기초생활수급 대상자 사각지대로 꼽히는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 촉구도
등록일 [ 2019년07월18일 15시44분 ]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과 ‘장애인과가난한사람들의3대적폐폐지공동행동’ 등 시민사회단체가 17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빈곤 문제 외면 말고 청와대는 응답하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박승원
복지정책의 기준선을 정하기 위한 ‘기준 중위소득’이 내년도 결정을 앞둔 가운데 장애인∙빈민 시민사회단체에서 ‘부양의무자기준을 완전 폐지하고 기준 중위소득을 대폭 인상하라’고 촉구에 나섰다.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아래 공동행동)’과 ‘장애인과가난한사람들의3대적폐폐지공동행동’ 등 시민사회단체가 17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빈곤 문제 외면 말고 청와대는 응답하라!’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준 중위소득을 결정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아래 중생보위)가 오는 19일 아침 7시에 열릴 예정이다. 중생보위 회의는 보건복지부(아래 복지부) 장관을 비롯한 중생보위 위원들이 기초생활수급자가 누가 될지, 기초생활수급자의 생계급여는 얼마큼 할지 등을 정하는 중요한 자리다. 하지만 최근 3년 동안 기준 중위소득 인상률은 평균 1.66%대에 불과했다. 공동행동은 “올해에는 2.09%, 지난해는 1.16%, 2017년에는 1.73% 인상되었을 뿐이다”라며 “이는 기준 중위소득 도입 이전인 2000년부터 2015년까지 최저생계비가 평균 3.9% 인상된 것과는 구별된다”고 꼬집었다.
기준 중위소득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비롯한 다양한 복지정책의 기준을 정하기 위해 중위소득을 바탕으로 한 국민 가구소득 중위값을 의미한다. 여기서 중위소득은 전 국민을 100명이라고 가정할 때 소득 규모가 50번째에 해당하는 사람의 소득을 가리킨다.
권오성 홈리스행동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 박승원
기초생활보장법 제2조는 최저생계비를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으로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급여 수준이 매우 낮아 수급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이자 홈리스행동 활동가인 권오성(61) 씨는 “그저 쪼들리는 생활비에 하루하루 생활을 영위하려 하니, 정말 고달프다”라고 말한다. 권 씨는 “조그만 수급비로 반찬도 잘 사 먹지 않고, 정부에서 주는 쌀 ‘나라미’로 밥을 해 먹는다. 남들처럼 친구를 만나거나 애인을 만나기도 어렵고 여가생활도 제대로 누릴 수 없다”라며 “수급을 내려놓고 일을 한 번 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지체장애 6급에 몸도 병들어 감히 꿈도 꾸지 못한다. 제대로 삶을 살아보려고 몸부림치지만, 가난 앞에서 생활 의욕도 꺾인다”라며 한탄했다.
허종 장애인배움터 너른마당 학생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 박승원
한편,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기초생활 수급자격을 박탈당할 뻔한 당사자도 있었다.
허종 장애인배움터 너른마당 학생(41)은 “부양의무자 관계단절을 인정받아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었지만, 두 달 전 어느 날 매달 나오던 수급비가 갑자기 끊겼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너무 놀라 주민센터에 전화하니, 아버지 명의로 집이 생겨 부양능력이 인정되므로 수급자격에서 탈락할 거라는 답이 돌아왔다”라며 “부모님 밑에서 장애를 가진 죄인처럼 살다가 자립한 지 겨우 2년 정도 됐는데 힘들게 버텨온 자립의지마저 부정당하는 것 같아 참담한 마음”이라고 전했다.
허 씨는 “더 화가 나는 것은 수급자격에 변화가 생기면 당사자에게 미리 알려 준비하게 해야지 수급비를 끊고 나서 항의하니 그제야 설명하는 것은 당장 수급비가 필요한 사람에게 죽으라는 얘기 아닌가”라며 “나는 뇌병변장애 2급으로 병원응급실도 자주 가는데 수급자가 아니면 각종 응급비용과 검사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한다”고 자신의 처지를 전했다. 다행히도 그는 3주 뒤 주민센터에서 그대로 수급을 유지할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과 ‘장애인과가난한사람들의3대적폐폐지공동행동’ 등 시민사회단체가 17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빈곤 문제 외면 말고 청와대는 응답하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박승원
부양의무자 기준은 본인이 재산이나 소득이 적어 기초수급권자 기준에 부합해도 1촌의 직계혈족이나 배우자에게 일정 기준 이상 소득이 있으면 수급을 받을 수 없도록 정하고 있어 복지 사각지대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이에 공동행동은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제정한 지 20년이 되었지만, 그동안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송파 세 모녀를 비롯해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다”라며 “문재인 정부는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공약하고, 보건복지부 장관도 이를 약속했지만, 추진 속도에 대한 줄다리기로 빈곤층을 고사시킨다”고 비판했다.
공동행동은 “정부가 책임지고 나서서 기준 중위소득을 대폭 인상하고, 조속한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통해 빈곤층 생존 문제에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외치며 △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공약의 조속한 이행 △ 급여별 선정기준 대폭 인상 △ 주거급여 기준임대료 인상 및 수급가구의 주거수준 상향 △ 주거용재산 소득산정 제외, 재산소득환산제 개선 △ 근로능력평가 폐지와 질 좋은 일자리 보장 △ 청년 수급자 신청 가로막는 까다로운 가구구성 기준 완화 등을 요구했다.
한편, 기자회견을 마친 이들은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겠다던 정부와 보건복지부가 속도를 늦추는 동안 수급권을 박탈당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퍼포먼스로 펼쳐 보였다.
기자회견을 마친 이들은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겠다던 정부와 보건복지부가 속도를 늦추는 동안 수급권을 박탈당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퍼포먼스로 펼쳐 보였다. 사진 박승원
박승원 기자 wony@beminor.com
http://www.beminor.com/detail.php?number=13636&thread=04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