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수급비 좀 올랐으면…” 프레스센터 앞에 모인 기초생활수급자들
복지제도 선정 기준되는 ‘기준 중위소득’ 결정하는 중생보위 열려
“2차 종합계획 때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 반영하겠다” 박능후 장관 재차 약속
등록일 [ 2019년07월30일 20시22분 ]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은 30일 오후 1시,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열리는 프레스센터 앞에서 ‘기준 중위소득 대폭 인상과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강혜민
30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비롯한 복지정책의 기준선이 되는 ‘기준 중위소득’을 결정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아래 중생보위)가 열리는 광화문 프레스센터 앞에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이 모였다.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전 폐지하고 기준 중위소득을 인상하라”는 이들의 요구에 이날 중생보위 회의장에서 만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는 내년 2차 종합계획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재차 밝히면서도, 기준 중위소득 인상에 대해선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또한, 이러한 예산 결정권을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 측은 이들을 애써 피하며 줄행랑을 쳐서 사람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 “내년에 수급비 좀 올랐으면…지금 수급비는 월세도, 밥값도 안 돼요.”
기초생활수급자인 ㄱ(52세) 씨는 신대방동 고시원에 산다. 방값은 월 26만 원인데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주는 주거급여는 최대 월 23만 원밖에 되지 않는다. 에어컨은 중앙냉방식이라 폭염이 이어지는 여름엔 견디기 힘들다. 덥고 답답해서 주로 바깥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늘진 곳을 찾아다니거나 지하철을 타고 정처 없이 떠돈다. 지체장애가 있는 그는 지하철이 무료다.
그는 생계급여 50만 원으로 한 달을 버텨야 한다. 일하고 싶지만 수급비가 삭감될 수 있어 일하지 못한다. 그는 “먹는 게 가장 힘들다”고 했다. 아침은 김밥으로 때우고 점심, 저녁은 백반집 가서 가장 싼 거(5000원), 혹은 편의점 도시락을 먹거나 무료 급식소를 찾아간다. 줄이고 줄여도 하루에 1만 원, 한 달에 30만 원이 밥값으로 들어간다. 그는 “요즘 식당 밥값이 7000~8000원인데 그걸 먹고 싶어도 수급비에서 그 금액을 욕심내는 게 오버가 아닐까 하는 강박관념에 맛있는 거 먹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 한다”면서 “주거비와 생계비를 합쳐 최소 백만 원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초생활수급비가 오르려면 이를 정하는 ‘기준 중위소득’이 올라야 한다. 이러한 내년도 기준 중위소득을 결정하는 중생보위가 30일 오후 2시, 광화문 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열렸다. 지난 19일 열린 중생보위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해 한 차례 연기된 것이다.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은 30일 오후 1시,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열리는 프레스센터 앞에서 ‘기준 중위소득 대폭 인상과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강혜민
이날 중생보위 개최 1시간 전인 오후 1시, 회의가 열리는 프레스센터 앞에는 기초생활수급자와 장애인 등 30여 명이 ‘기준 중위소득 대폭 인상과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중위소득은 전 국민을 소득순으로 1~100등까지 줄을 세웠을 때 가운데(50등)에 있는 사람의 소득을 의미한다. 정부는 이를 경제지표에 반영해 ‘기준 중위소득’을 산출한다. 기준 중위소득은 기초생활보장제도 뿐만 아니라 정부 복지사업의 수급자 선정 기준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날 기자회견을 개최한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아래 공동행동)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19년 사이 기준 중위소득 인상률은 1.16~2.09%로 1999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시행 이후 역대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공동행동 측은 “특히 문재인정부 들어 저소득 가구의 경제적 상황이 악화되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인데, 최근 생계급여 수급자는 감소 또는 정체 중인 추세가 나타났다”고 지적한다. 2014년 2월 송파세모녀 사건으로 이듬해인 2015년 정부가 ‘맞춤형 급여’로 제도를 개편한 후, 현재는 최저생계비 대신 기준 중위소득이 급여별 선정 기준과 급여 수준을 결정하고 있다.
- “친구 만나면 밥 한 끼라도 먹어야 하는데 적은 수급비로 친구 만나는 것도 꺼려져”
이날 기자회견에서 기초생활수급자인 박용수 씨도 턱없이 낮은 기초생활수급비에 대한 갑갑함을 토로했다. 박 씨는 “적은 돈으로 살다 보니 제일 먼저 단절되는 게 남들과의 소통이다”면서 “친구가 한 번 사면 나도 한 번 사야 하는데 이게 부담되니 친구 만나기가 겁난다. 그래서 친구 만날 때는 점심 걱정에 꼭 밥을 챙겨 먹고 나간다”고 말했다.
박용수 씨가 턱없이 낮은 기초생활수급비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수급 대상자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어졌다. 지난해 주거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었으나,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에서 30세 미만의 미혼 자녀는 주민등록이 분리되어 있어도 부모와 한 가구로 인정하고 있어, 청년 가구는 단독으로 주거급여 신청을 할 수 없다. 30세 미만의 청년들은 넓은 의미에서 여전히 주거급여에서의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받고 있는 것이다.
최지희 민달팽이 유니온 위원장은 “정부는 ‘사지 멀쩡한 20대 청년’은 수급비를 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주거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서 청년을 제외하는 것 같다”면서 “그런데 청년의 삶이 과연 그런가. ‘정상궤도’에 오르지 못한 청년들은 자신을 죽여가며 살아가고 있다”며 이번 중생보위에서 이 문제도 논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문재인정부는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약속했음에도 이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여전히 불투명하다고 비판했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과 기획재정부 관료들은 수없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전 폐지하겠다고 했다. 이는 대통령의 약속이고 장관의 약속인데 중생보위에서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결정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또한, “내년에 중증장애인에 한해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는데 특정 유형만 폐지하는 게 아니라 생계급여, 의료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전 폐지해달라”면서 “이것이야말로 빈곤이 더욱 심각해지는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 박능후 장관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 내년 2차 종합계획 때 반영하겠다”
기자회견을 마친 이들은 중생보위에 참여하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과의 면담을 위해 중생보위가 열리는 19층 회의실 앞으로 향했다. 25분간의 기다림 끝에 만난 박능후 장관은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촉구하는 박경석 대표에게 “내년 제2차 기초생활보장종합계획(2021~23년) 발표 때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가) 들어간다”고 응답했다. 이는 지난 4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과 동일하다. 당시 박 장관은 전면 폐지에 따른 예산을 약 4조 원 안팎으로 추산한다고 밝혔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과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강혜민
이에 대해 박경석 대표가 “기획재정부도 이를 발표할 수 있도록 해달라”며 예산 확보를 촉구하자, 박능후 장관은 “(기획재정부를) 설득하겠다”고 답했다. 또한 박 대표는 “현재 기획재정부의 실링 예산에 갇혀있는데, 대통령도 내년에 확장적 재정 정책을 펴겠다고 했다.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폐지 예산도 국회에 올라가기 전에 예산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거듭 촉구했다.
반면, 기준 중위소득 상향에 대한 요청도 이어졌으나 박능후 장관의 답변은 회의적이었다. “기준 중위소득 인상률이 평균 2%도 안 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수급자들 삶이 너무 어렵다”는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의 지적에 박능후 장관은 “다른 연금 상승률도 1%도 안 되는데 수급자들만 많이 할 수 없는 상대적 상황이 있다”며 부정적인 답변을 내놨다.
박능후 장관이 회의장에 들어간 이후에도 참가자들은 중생보위에 참여하는 류상민 기획재정부 복지안전예산심의관을 만나기 위해 기다렸다. 그러나 2시 5분경에 회의장에 도착한 류 심의관은 회의 시간에 늦었다며 사람들이 바로 문 앞에 있음에도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회의장으로 들어갔다.
이에 대해 박 상임공동대표는 “지난 3월부터 예산 관련 면담을 요청했는데 거부당하고 있다.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폐지 예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면서 중생보위 회의가 끝날 때까지 류 심의관을 기다렸다. 그러나 오후 6시경 회의를 마치고 나온 류 심의관은 면담 날짜를 잡아달라는 사람들의 거듭된 요청에도 “내부에 건의 드리겠다. 국회에 가야 한다”며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제58차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진행되는 모습. 사진 강혜민
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http://www.beminor.com/detail.php?number=13676&thread=04r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