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간 공무원 생활했는데, ‘피성년후견인이라고 나라에서 버림받아’… 소송 제기
25년간 공무원으로 일했지만, 피성년후견인 되자 국가공무원법에 의해 당연퇴직 당해
김 씨 유가족들 임금 등 청구소송, 국가공무원법 ‘당연퇴직’ 조항 위헌법률심판 제청
등록일 [ 2019년08월01일 15시13분 ]
피성년후견이라는 이유로 25년간 유지한 공무원 지위를 박탈당한 김아무개 씨의 유가족이 임금청구 소송과 국가공무원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제기했다.
1일 오전 11시, 양재동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성년후견제개선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와 사단법인 두루는 ‘피성년후견인 공무원 자격제한에 대한 임금 등 청구소송 및 위헌법률심판제청’ 기자회견을 열고, 이와 같은 계획을 밝혔다.
1일 오전 11시, 양재동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성년후견제개선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와 사단법인 두루는 ‘피성년후견인 공무원 자격제한에 대한 임금 등 청구소송 및 위헌법률심판제청’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허현덕
- 25년간 공무원 생활, ‘피성년후견인 됐다’고 깡그리 무시… 휴직 기간 받은 임금과 보험금도 환수
김아무개 씨는 공무원으로 일하던 2015년 11월 가슴 통증으로 쓰러졌고, 혼수상태가 되었다. 병상에 누워 있는 동안 대출상환 등의 문제가 발생해 2016년 12월 아내가 김 씨의 성년후견인이 되었다. 김 씨의 병세가 호전되지 않자, 김 씨의 성년후견인인 아내는 2018년 4월 명예퇴직 신청을 하게 된다.
그런데 명예퇴직을 신청하면서 김 씨가 피성년후견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졌고, 이에 국가는 김 씨의 ‘당연퇴직’을 결정했다. 당연퇴직은 '일정한 사유의 발생만으로 그 사유발생일 또는 소정의 날짜에 당연히 노사관계가 종료되거나 퇴직하는 것'으로 자동퇴직이라고도 한다. 당사자가 직접 신청하는 명예퇴직과는 다르다. 그러면서 김 씨는 한순간에 2016년 12월에 퇴직한 것으로 처리됐다. 국가공무원법 제33조 결격사유 제1항의 ‘피성년후견인 또는 피한정후견인은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다.
김 씨는 25년간 공무원으로 일했지만 피성년후견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한순간에 지위를 잃었다. 국가는 2016년 12월부터 2018년 4월까지 휴직 기간 중 김 씨에게 지급된 임금과 단체 보험금을 반환하라고 했다. 같은 기간, 김 씨의 건강보험이 지역가입자로 적용되면서 해당 기간의 보험료도 한꺼번에 납부해야 했다.
김 씨는 공무원지위확인 소송을 준비했지만, 지난 5월 30일 사망했다. 이에 김 씨의 유가족이 원고로 나서 고인의 명예 회복을 이어가게 됐다. 김 씨의 유가족은 억울하게 반환한 임금과 보험금,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보험료 등의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추후 국가공무원법에서 피성년후견인은 당연퇴직을 규정하고 있는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도 제청할 예정이다.
- 성년후견인 제도 취지 무색하게 ‘의사결정 권리 지원’보다 ‘권리 제한’으로 악용돼
지난 2013년 7월 시행된 성년후견제도는 치매노인 등 성인이지만 재산이나 신상과 관련한 결정이 어려운 사람을 위해 마련됐다. 제도를 통해 피성년후견인이 법적권리 행사에 있어 타인으로부터 손해를 입지 않고, 일상생활의 어려움 없이 지속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취지와 달리 성년후견제도는 피성년후견인의 의사결정 권리를 심각하게 제한하고, 자기결정권을 훼손하고 있다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2014년에는 UN장애인권리협약 장애인인권위원회가 우리나라의 성년후견제도에 대해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며 시정 권고를 내리기도 했다.
현재 피성년후견인은 공무원은 물론 사회복지사도 될 수 없다. 300여 개의 법안에서 피성년후견인의 자격을 제한하는 결격조항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피성년후견인은 투표조차 할 수 없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 사무국장은 “그동안 한정치산·금치산제도가 인권침해 제도라는 비판을 받고 민법 체계 안에서 사라졌는데, 이제는 성년후견제도가 똑같은 기능을 대신하고 있다”며 “공무원 등의 직업 결격사유에 한정치산·금치산자를 피성년후견인으로 대체해 악법을 지속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성년후견제도는 우리 모두에 해당하는 일, 인권 침해 바로 잡아야”
기자회견에서는 ‘의사결정에 대한 제도’인 성년후견제도가 직업의 자격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문애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25년간 몸담았던 직장에서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피성년후견인이 됐다는 이유로, 더 이상 공무원이 아니라고 한 사건”이라며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공무원 신분이 사라지고 장애만 남은 전형적인 ‘낙인찍기’ 제도”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법이 만인에게 평등하면 장애와 질병의 이유로 그 사람의 가치와 정체성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소송대리인 이지혜 법무법인(유) 지평 변호사(왼쪽)와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대표(오른쪽)가 발언하는 모습. 사진 허현덕
소송대리인 이지혜 법무법인(유) 지평 변호사는 김 씨의 지위를 박탈한 국가공무원법의 ‘당연퇴직’ 조항이 명백한 헌법 위반이라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현 ‘당연퇴직’조항이 “질병이나 장애로 인해 피성년후견인이 됐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차별하며 범죄자와 같은 취급을 하고 있다”며 “현행 국가공무원법은 피성년후견인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기회나 절차적 보장도 주어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며, 다른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후진적 입법이라고 비판했다.
박김영희 장추련 상임대표는 성년후견제도가 특정 장애인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모든 국민의 인권에 관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박김 대표는 “아마 김 씨도 그동안 성년후견제가 자신의 일이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누구라도 장애와 질병을 얻어 자신의 권리를 거부당하고 부정당할 수 있는 악법을 바로잡아야 사회 구성원 모두의 권리가 온전히 지켜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성연 장추련 사무국장은 “이번 소송은 성년후견제도를 활용했다는 이유만으로 공무원으로서 그간의 노고를 부정당한 당사자의 명예 회복을 위한 것인 동시에 누군가를 근본적으로 배제하는 법을 바꾸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의미를 짚으며, 그 과정에 많은 관심을 모아 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허현덕 기자 hyundeok@beminor.com
http://www.beminor.com/detail.php?number=13694&thread=04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