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 활동지원 사업들이 잇따라 칼바람을 맞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사회보장기본법’ 24조에 따라 각 지자체에 사업 중단 혹은 축소를
종용하고 있다. 활동지원 24시간 지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인천광역시, 경기도 고양시, 경기도 포천시 등은 복지부 권고에 따라 활동지원 24시간
지원을 중단하거나 신규 신청자를 받지 않고 있다.
인천에서 2014년 9월부터 24시간 활동지원을 받던 3명의 중증장애인들은 활발하게 사회 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지난 2월부터 지원이
끊기면서 그들의 삶은 180도 변했다.
밤이 사라진 그들의 삶, 낮 생활도 헝클어져
권오진
씨가 침대에 누워있다. 그의 눈 주변에는 거뭇거뭇한 그늘이 져 있었다.
지난 22일 오후 인천시 계양구에 있는 권오진 씨(척수 1급, 44)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요즘 다크 서클이 심해졌어요.” 마치 수일 밤을 새운 듯한 낯빛으로 그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1996년 뺑소니 교통사고로 경추 4~7번을 다쳐 목 아래 전신이 마비됐다. 2002년 경 장애인거주시설에 입소했고, 2011년
시설에서 나온 동료와 함께 자립을 시작했다. 동료가 결혼하자 2014년부터는 혼자 살았지만, 그 즈음에 활동지원 24시간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권 씨는 하루 약 14시간만 활동지원을 받을 수 있다. 주간에 활동보조인이 교체되는 1~2시간 남짓의 공백을 빼고 자정부터 9시간은
혼자가 된다. 오전 2시 30분, 4시 30분, 6시 30분 야간순회서비스 방문이 이뤄지지만, 그의 활동을 보조하기에는
불충분했다.
이날 오전 그는 병원에 다녀왔다고 했다. 활동지원 24시간이 끊긴 뒤 욕창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지난 2개월 동안 욕창이 지름 약
3cm에서 약 7cm로 커지면서 오른쪽 골반 부분을 잠식했다. 기존에는 활동보조인이 꾸준히 자세를 바꿔줬지만, 현재 새벽에 단 세 번 자세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욕창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순 없었다. 그가 누워 있는 침대 밑으로는 소변줄과 소변 봉투가 놓여 있었다. “물을 한꺼번에 먹으면
어쩌다 (소변 봉투가 차서) 역류하거든요. 머리가 아파오다 (심하면) 뇌사해요. 그렇다고 물을 안 먹으면 방광에 염증이 생겨서 줄 막히면 또
뇌사하는 거죠.”
그만큼 그를 잘 아는 사람이 세심하게 관리해야 하지만, 최근 몇 번은 그렇지 못했다. 언젠가 그의 사정을 잘 모르는 순회돌보미가 소변줄을
잠그고 가버렸다. 그날 그는 활동보조인이 올 때까지 머리가 깨지는 듯한 고통을 겪었다. 역류한 소변이 침대를 적셔 욕창이 더
심해졌다.
걱정이 많아진 권 씨는 쉽사리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얼마 전 전기 합선으로 불똥이 튄 적이 있었지만, 24시간 활동지원을 받았던 때여서
활동보조인이 빠르게 조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집에서 난 불이 몸을 태워도 그저 바라만 봐야 하는 처지가 됐다. 수면제를 먹고 억지로
잠을 청하곤 했지만, 이제 내성이 생겨서 1시간도 못 잔다고 했다.
그는 낮에 활동보조인이 오면 안심하고 잘 수 있다고는 했지만, 병원에 가거나 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그마저도 어렵다. 게다가 오전에 잠을
자면 그날은 거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시간을 아무리 쪼개고 아껴보아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점점 늘어갔다. “24시간 받을 때는 볼 일도
제때 보고, 잠도 충분히 자서 편하고 안심됐죠. 목욕도 자주 했고요. 그때는 친구들도 자주 만났는데……. 지금은 어디 나가도 끝까지 있지 못하고
집에 와야 해요.”
2월
이후 오랜만에 야학에 나온 유명자 씨. 예전에 비해 창백한 낯빛이었다.
이날 인천 민들레장애인야학에서 만난 유명자 씨(뇌병변 1급, 42)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유 씨는 활동지원을 받는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16시간이 끝나면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텔레비전만 쳐다보고 있어야
했다. 화장실을 가는 것도, 물을 마시는 것도 순회돌보미가 최초로 집에 오는 오전 1시까진 참아야 한다. 그녀의 상태를 잘 모르는 순회돌보미에게
자세를 어떻게 바꿀지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불편했다.
야학 교사들은 2월 이후 그녀가 야학에 온 것이 두세 번에 불과하다고 했다. 야학에 나오는 것은 그녀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고
했지만, 지금은 낮에 피곤하고 졸려서 수업을 듣는 게 거의 어렵다고 했다. 오랜만에 동료와 교사들을 본 덕인지 그녀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지만,
창백한 얼굴에서 묻어나는 피로감을 숨길 수는 없었다.
그들의 삶에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밤이 사라지면서, 근심, 걱정, 피로가 짓누르는 낮이 남았다. 24시간 활동지원이 사라지면서 활동지원을
받는 낮의 시간조차 제대로 된 생활이 어려울 만큼 헝클어졌다.
활동지원이 아까운 정부? “장애인들 어떻게 사는지 직접 보아라”
복지부는 24시간 활동지원은 “장애인 자립생활 이념과 상충하므로 시행이 곤란”하다고 한다. 활동지원제도는 주간(16시간)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 원칙이며, 야간에 활동지원을 제공하는 것은 응급알림e나 야간순회서비스 등과 중복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 복지부와 지자체, 경찰은
제도의 안팎에서 장애인들이 필요 이상으로 많은 활동지원 시간을 받아서 ‘부정 수급’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들 기관의
입장에서는 권 씨와 유 씨에게 구태여 잠자는 몇 시간까지 활동보조인을 배치하는 것이 아까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권 씨와 오 씨의 상황을 보면 장애인 자립생활 이념에 어긋나는 것은 다름아닌 복지부와 지자체의 24시간 활동지원 중단 결정이었다.
일상에서 낮과 밤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고, 밤에 주로 이뤄지는 휴식이 낮에 이뤄지는 여러 활동에 필수적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게다가
야간순회서비스는 권 씨와 유 씨에게 24시간 활동지원을 완전히 대체하지 못했다. 24시간 활동지원은 중복과 낭비가 아닌, 그들의 자립생활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
권 씨와 유 씨가 24시간 활동지원을 철회한 복지부와 지자체에 호소했다. “장애인들이 어떻게 사는지, 어떻게 시간을 쓰는지를 직접
보아라”고. 그리고 자신들을 비롯한 다른 장애인들에게 편안한 낮과 밤을 돌려달라고. 그동안 탁상에서 장애인 활동지원 예산과 시간, 결과적으로는
그들의 삶까지 쥐락펴락했던 정부가 숙고해야 할 말이다.
지난
1월 권오진 씨(왼쪽)와 유명자 씨(오른쪽)가 인천시청 앞에서 인천시에 24시간 활동지원 중단 방침을 철회하라고 호소하는 모습. (유명자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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