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 민주화 노력에도 인권침해 계속… 탈시설 결의도 물거품
장애계 “동구청·대구시청, 시설 폐지하고 탈시설·자립지원 하라”
동구청, 시설폐쇄 행정명령 권한 있지만 ‘나 몰라라’
장애계 대표단 출입 막아선 동구청 공무원들… 결국 면담 ‘결렬’
장애계가 ‘시설 민주화’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인권침해가 거듭 발생하고 있는 청암재단 산하 장애인거주시설 폐쇄와 거주인 탈시설을 촉구하고 나섰다.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대구장차연)는 29일 오후 2시, 대구 동구청 앞에서 청암재단 산하 거주시설에서 벌어진 인권침해 규탄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날 결의대회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장애인 활동가 200여 명이 참석했다.
- 시설 민주화 노력했지만 인권침해 계속
청암재단은 1952년 설립된 사회복지법인으로, 현재 지적장애인거주시설 청구재활원(장애인 118명, 직원 68명), 중증장애인거주시설 천혜요양원(장애인 26명, 직원 22명)을 운영하고 있다.
청암재단은 지난 2005년 KBS 추적60분을 통해 각종 운영비 비리 및 거주 장애인에 대한 강제노역 및 인권유린, 임금 및 생활자금 착취 사실이 폭로됐다. 그 결과 비리와 폭행에 연관된 재단 이사진이 퇴진했다.
지난 2015년에는 청암재단 문제를 해결하고자 대구장차연 등 장애인단체가 참여한 청암재단 이사회가 꾸려졌다. 이사회 조사를 통해, 시설장과 직원이 보호의무를 소홀히해 거주 장애인이 상해를 입거나 사망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게다가 정신병원에 다수의 거주 장애인을 강제 입원시켰던 문제도 드러났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해당 사안에 대해 2016년 1월 청암재단에 시정권고 처분을 내렸다.
청암재단은 즉각 재발방지 약속과 사과문을 발표했다. 또한 2015년 청암재단 이사회는 집단 거주시설의 구조적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공공화와 탈시설화’를 선언했다. 청암재단 이용자회, 노동조합, 장애인단체 등은 거주 장애인의 탈시설 및 자립생활을 적극 지원하기로 했고, 법인은 재원을 기부채납해 공공화한다는 의지도 나타냈다.
하지만 시설 민주화 노력에도 거주 장애인에 대한 인권침해는 계속됐다. 2019년, 청구재활원 직원 3명이 거주 장애인을 폭행하고 강제추행을 저질러 같은 해 10월 동구청으로부터 행정처분을 받았다. 올해에는 사회복지사가 물건을 들고 거주 장애인을 위협하는 행위가 적발됐다. 또 지난 10월 천혜요양원에서 노동조합의 간부이자 사회복지사가 식사시간보다 일찍 개인 밥상을 펼쳤다는 이유로 거주 장애인을 폭행했다는 신고가 접수돼 검찰에 송치됐다.
- 7일째 동구청 앞 천막 농성… 동구청은 ‘나 몰라라’
청암재단 산하 시설에서 인권침해 사건이 계속되자, 대구장차연은 지난 23일부터 대구 동구청 앞에서 △인권침해 시설 폐쇄조치 △거주 장애인에 대한 개인별 주택 및 24시간 지원체계 보장 △시설 폐쇄에 따른 직원 고용보장 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며 7일째 천막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동구청은 인권침해 시설에 대한 행정처분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동구청은 대구시청이 동의하지 않으면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대구시청은 동구청에 권한이 있다며 수수방관하고 있다.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모양새다.
박명애 대구장차연 공동대표는 “장애인이 폭행, 성추행 등 억울한 일을 당하면 책임과 권한이 있는 곳은 시간을 질질 끌기만 한다. 아무도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범인을 지목하는 일에도 늦장 대응을 하고 있다. 나중에 가면 맞은 사람은 있는데 때린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한다”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어 박 대표는 “동구청은 너무하다. 이틀 전 부구청장이 나와서 천막 농성하는 곳에 전기 좀 달라고 구걸하듯이 말했는데도 전기를 주지 않아 발전기를 이용하고 있다”며 “동구청과 대구시청이 청암재단 산하 시설들을 하루빨리 폐쇄해서 거주인들의 탈시설이 꼭 이뤄져야 한다. 그때까지 힘내서 같이 투쟁하자. 탈시설 장애인들을 많이 만나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자”고 외쳤다.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역시나 좋은 시설은 없었다. 시설이 아무리 민주화 된다고 해도 그 안에서 거주 장애인은 인권 유린당하고, 학대가 이뤄지고 있다”라며 “그래서 우리는 탈시설을 요구한다. 인권침해가 발생한 시설을 해체하고 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해야 한다. 시설폐쇄 권한이 있는 동구청은 인권침해가 있는 시설에 대해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적용해 폐쇄 명령을 내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 탈시설 결의한 노동조합, 돌연 탈시설에 반기
설상가상으로 청암재단의 ‘공공화와 탈시설화’에 참여했던 노동조합이 탈시설 논의가 본격화되자 ‘탈시설은 인권침해’라며 돌연 이사진에 반기를 들었다. 노동조합 측은 청암재단 이사인 노금호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을 허위사실적시로 인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박명애 대구장차연 대표도 같은 이유로 고소한 상황이다.
조민제 대구장차연 집행위원장은 “노동조합은 2025년까지 청암재단 산하 시설의 폐지와 탈시설 추진을 약속했지만, 당시 노조 집행부가 했던 약속이 아니라며 거부하고 있다. 올해 불거진 노동조합과의 갈등 속에서 청암재단 탈시설 정책은 좌초됐다. 노동조합은 장애인을 학대해 검찰에 송치된 직원을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무죄라며 아무런 징계조차 하지 않겠다고 한다”고 분노했다.
이길우 민주노총 대구본부 본부장은 사과의 말을 전했다. 이 본부장은 “시설을 민주화하자는 데 동의했고, 구성원들과 노동조합을 만들어 민주노총 소속으로 활동해왔다. 그런데 올해 탈시설과 관련해 여기 있는 동지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라며 “지난 10년간 시설의 민주화 목표는 탈시설 하나였다. 모든 시설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폐쇄되어야 하고, 좋은 시설은 있을 수 없다. 민주노총은 동지들이 탈시설하는 그날까지 끝까지 함께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 동구청 출입 막아선 공무원들… 결국 대표단 면담 ‘결렬’
한편, 결의대회가 끝난 오후 4시 30분경 장애계 대표단이 예정된 동구청과의 면담을 위해 건물로 들어서자, 동구청 직원 여럿이 대표단과 장애인 활동가를 몸으로 막아섰다. 동구청 1층 로비 입구에서 동구청 직원·경찰과 장애인 활동가의 크고 작은 마찰이 발생했다.
동구청은 시민의 출입을 막은 이유에 대해 명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한 동구청 직원은 “잘 모르겠다. 위에서 내려와 막으라는 지시를 듣고 내려온 것”이라고 둘러댔다. 이로 인해 대표단은 긴 시간 면담 장소에 들어가지 못한 채 대치하다 결국 면담이 결렬됐다.
또한 같은 시간, 장애인 활동가들은 동구청 앞 자동차 출입문을 막으며 청암재단 산하 시설 폐지와 탈시설 지원을 외쳤다. 이에 차에 타고 있던 시민들은 경적(클랙슨)을 울리며 활동가를 향해 욕을 퍼부었으며, 경찰은 방패로 활동가를 강경 진압했다.
한편, 장애계는 저녁 7시에 동구청 앞에서 문화제를 열고 1박2일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은 내일 오전 대구시청까지 행진하여 대구시청 앞에서 청암재단 문제해결과 탈시설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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