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 장애인노조 깃발 휘날리며 “장애인도 노동자다”
코로나19로 장애인 노동의 열악함 더 선명하게 드러나
보호작업장 폐쇄됐지만 휴업급여 못 받아… “노동권 보장하라” 촉구
등록일 [ 2020년05월01일 16시23분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장애인노동조합지부는 130주년 세계노동절인 5월 1일 오후 1시, 고용노동부 서울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난 상황 및 노동현장에서의 차별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장애인 최저임금 보장하라”라는 문구가 풍선에 붙어 있다. 사진 강혜민
장애인노조가 설립 이래 처음 맞이한 노동절 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로 인한 재난 상황과 노동 현장에서의 차별을 알리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장애인노동조합지부는 130주년 세계노동절인 5월 1일 오후 1시, 고용노동부 서울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장애인은 최저임금법 제7조의 적용제외 조항으로 인해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를 비롯한 삼성과 같은 대기업은 장애인 의무고용률(3.1%)을 외면한 채 벌금으로 대체하고,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매년 수천억 원의 벌금을 거둬들이면서도 장애인 고용과 실업 대책에는 무관심하다.
이러한 장애인 노동의 열악함은 코로나19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났다. 장애인노조에 따르면, 경북지역의 직업재활시설의 장애인 노동자들은 코로나19로 보호작업장 폐쇄에 따른 휴업급여도 받지 못하고, 우여곡절 끝에 받게 되더라도 최저임금 적용제외로 평균 56만 1천 원에 불과한 임금의 70%만 지급받고 있다.
대구경북지역에서 활동하는 아리 조합원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실제 대구경북지역에서 활동하는 아리 조합원은 “코로나19로 인해 보호작업장에서 일하는 장애인 노동자들은 현재 무임금으로 집에서 쉬고 있다. 일반직장에서는 근로기준법에 근거해 휴업급여가 나오지만 장애인 노동자들은 이조차도 받지 못하고 있어 생계가 많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알렸다. 그는 “코로나19 이전에도 정부는 장애인 노동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은 채 민간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었다”면서 “장애인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제외 조항을 폐지하고, 보호작업장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정부가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로 마련한 동료지원가 또한 상황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작년 연말, 고 설요한 동료지원가의 죽음으로 동료지원가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세상에 드러났다. 그러나 올해 상담 건수 등만 조금 낮아졌을 뿐 실적제를 중심으로 한 근본적 문제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이처럼 중증 발달장애인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노동 환경에 코로나19까지 겹쳐 현재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김동호 조합원은 말했다.
피플퍼스트서울센터 동료지원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 조합원은 “코로나19로 인해 한 달 정도 센터 출근이 금지되었다. 제 유일한 공간이자 일터인 센터에 나가지 못한 채 집에만 있어야 했는데, 감옥 같은 장애인시설에서 생활하는 것만 같아 너무 답답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출근을 다시 하게 되었지만 문제는 계속됐다. 외부교육 활동 등이 모두 금지되었기에 활동적인 일을 좋아하는 많은 동료들이 힘들어했다. 문서작성 같은 사무적인 일만 해야 했다”면서 “코로나19로 내려진 휴관 조치로 다른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은 센터에 오고 싶어 해도 오지 못했고 자조모임도 진행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는 가장 큰 문제는 임금이라고 말했다. 동료지원가는 월급 형식으로 우선 돈은 받지만 실적제여서 실적을 채우지 못할 경우, 채우지 못한 실적만큼 연말에 돈을 환수해가기 때문이다. 김 조합원은 “코로나19로 자조모임, 교육, 집회 등에 참여하지 못했는데도 월급이 들어왔다. 미안한 마음과 함께 부담감도 많았다. 실적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중순이나 연말에 일을 몰아서 많이 해야 할 것이다”라면서 “작년에 일주일에 세 번 교육 나갔던 악몽이 떠오르며 힘들기도 했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장애인노동조합지부는 130주년 세계노동절인 5월 1일 오후 1시, 고용노동부 서울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난 상황 및 노동현장에서의 차별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사진 강혜민
이태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고 설요한 동료지원가와 지난 4월 29일 발생한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발언을 이어갔다.
이 부위원장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에 정부는 기업에는 200조 원이라는 공적 자금을 풀어 기업을 살리면서, 정작 일하지 못해 죽을 수밖에 없는 취약한 노동자들에게는 13조 원의 돈으로 무마하려고 한다. 이조차도 취약한 노동에 대한 보호가 아닌 노동권이 보장된 노동에만 선별적으로 지원한다”고 규탄했다. 이 부위원장은 “자본을 중심으로 한 대책은 자본을 살리는 데에만 우선해서, 불안정 노동이나 노동의 생산성을 쫓아가지 못하는 노동은 노동으로 인정조차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세계노동자의 날에 만국의 노동자들은 떨쳐 일어나 불안정 노동, 자본의 위기에 대응해 싸워야 한다”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코로나19의 엄중함을 뚫고서라도 살 수밖에 없기에 투쟁의 전선에 나서고 있다. 장애인 노동자들이 그 첫걸음에 섰다. 여러분의 연대와 투쟁을 기억하며 함께 걸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발간한 2019년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15세에서 65세까지의 등록장애인 129만 1818명을 조사한 결과 경제활동인구(취업자+실업자)는 69만 2653명에 불과했다. 이들 중 경제활동을 ‘해본’ 사람은 53.6%로, 전체인구의 경제활동참가율 70.0%보다 16.4%P 낮다. 즉, 절반에 가까운 장애인이 노동자로 인정받아 고용된 적이 없으며, 이들 중 해당연도에 실직한 사람 6.8%를 고려하면 절반이 넘는 장애인이 현재 노동자가 아닌 것이다.
게다가 장애인 노동자는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대부분 기간제 노동자로 고용이 불안하다. 장애인노조는 “실직한 장애인 노동자들의 해고 사유는 대부분 계약 기간 만료”라면서 “한 조합원은 자신을 고용하던 한 시청으로부터 계약 기간 만료 뒤 재계약을 단호하게 거부당했는데, 그 이유는 ‘장애인 행정도우미 사업은 모든 장애인에게 돌아가야 하니 특정인만 기회를 독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대체 언제까지 장애인은 단지 시혜와 동정의 대상일 뿐인가? 노동자의 권리는 ‘시혜받는 자’라는 프레임 속에 갇힐 수 없는 당당한 권리이다”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들은 장애인 노동자의 일할 권리 보장을 촉구하며, 고용노동부와 관계부처에 종합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장애인도 일하고 싶다. 실업대책 마련하라”, “장애인도 노동자다. 최저임금 보장하라”는 피켓을 들고 “투쟁”을 외치고 있는 장애인 활동가들. 사진 강혜민
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http://www.beminor.com/detail.php?number=14629&thread=04r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