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앞 집결한 장애인들 “내년도 예산 확대” 1박 2일 투쟁 돌입
장애등급제·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 위한 예산 확대 촉구
예산 쥐고 있는 국회와 기획재정부 향해 한 목소리
등록일 [ 2019년11월15일 19시37분 ]
15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외 5개의 장애단체가 모여 장애등급제 및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를 위한 2020년 예산쟁취 전국결의대회를 열었다. 사진 이가연
장애인들이 장애등급제·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위한 내년도 예산 확충을 국회에 요구하며 1박 2일 투쟁에 돌입했다.
15일, 오후 2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등 5개 단체가 모여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와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 그리고 2020년 예산쟁취를 요구하는 1박 2일 전국 결의대회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작했다. 현재 국회에서는 2020년도 예산 심의가 진행 중이다.
전장연은 이날 결의대회에서 현재 문재인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했다. 정부는 올해 7월 1일부터 장애등급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했지만, 단지 ‘장애 등급’이 ‘장애 정도’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복지서비스 판정에 있어 여전히 ‘장애인의 욕구와 환경’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15일, 비가 오는 궂은 날씨 속에 결의대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국회 앞에 모여 있다. 사진 이가연
그 이유에 대해 장애계는 “예산이 필요한 만큼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예산이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2020년 장애인 예산안은 장애등급제 폐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여전히 OECD 평균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전장연은 “내년에 500조가 넘는 슈퍼예산이라고 불리는 예산에서 장애인과 관련된 예산은 실링(ceiling) 예산에 가로막혀 ‘구호품’ 수준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이날 결의대회에 참석한 윤종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장은 “주간활동서비스와 부양의무자 기준과 같은 중요 장애인 정책에 국회가 무관심하다”면서 현재 예산을 심의하고 있는 국회를 향해 “앞으로 예산 확보를 위해 자유한국당과 민주당 당사를 점거할 것이며 (장애인) 부모가 원하는 예산의 증액을 위해 싸우겠다”고 밝혔다.
변경택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회장이 결의대회에서 투쟁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변경택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회장은 “장애등급제가 진짜로 폐지되었다면 모든 장애인이 필요한 만큼 활동지원과 장애인연금을 받아야 하지만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이유는 예산이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며 앞으로 기획재정부가 건물주인 국가인권위원회 건물과 청와대 앞에서 계속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보건복지부는 활동보조서비스가 하루 24시간 필요한 이들을 인정하지 않은 채, 잠자는 시간 8시간을 제외한 최대 16시간만 서비스 시간으로 인정하고 있다”면서 ‘활동지원 24시간 보장’을 촉구했다. 최 회장은 2012년 활동지원사가 퇴근한 지 3시간 만인 새벽 2시경, 자택에서 홀로 화재로 숨진 고 김주영 활동가를 떠올리며 “위험에 대처하기 어려운 장애인을 위해 24시간 활동보조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고 김주영 활동가는 화재가 발생한 새벽, 활동지원사가 없어 전동휠체어를 타지 못하고 비장애인 걸음으로 다섯 걸음에 불과한 거리를 기어서 탈출을 시도했지만, 참변을 당했다.
박명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닫는 발언을 하고 있다. 박 대표 뒤에는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국회 앞 지붕위에서 고공 단식 농성 중인 최승우 씨가 보인다. 사진 이가연
‘활동지원 만 65세 연령제한’에 관한 문제도 쏟아졌다. 박명애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내년 1월이면 만 65세가 되어 활동지원이 중단되고 노인장기요양보험으로 강제 전환된다. 노인장기요양으로 전환되면 하루 최대 4시간밖에 서비스를 이용 못 하니 다시 꼼짝없이 집에 갇히게 된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마치 고려장 당하기를 기다리는 기분”이라며 “65세가 넘어서도 문밖에 나와 함께 투쟁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싸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앞에서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촉구하는 농성을 하고 있는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였을 때, 민주당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현재 국회에서는 ‘복지부가 계획을 낸다고 했으니 기다리라’는 말만 할 뿐 손을 놓고 있다”면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90만 명의 빈곤층이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며 국회를 강하게 비판했다.
한편, 이날 결의대회에는 2년째 국회 앞에서 ‘형제복지원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농성 중인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모임 대표도 참석하여 연대발언을 했다. 지난 6일부터는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 씨가 국회 앞 지하철역 지붕 위에 올라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법’ 통과를 촉구하며 고공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한 대표는 국회 앞 지붕에 있는 최 씨를 가리키며 “저 위에 있는 사람이 왜 곡기를 끊고 지붕 위로 올라갔겠냐”고 반문하며 “죽고 싶어서 올라간 것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요구하기 위해 올라간 것이다”며 형제복지원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15일, 국회 앞에서 결의대회를 마치고 장애단체들이 자유한국당 당사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이날 전장연은 △장애인연금 대상 확대 △장애인활동지원 확대 △주간활동지원 확대 등을 촉구하며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해선 2020년 정부 예산안(약 2조 1400억 원)보다 약 1조 1500억 원 많은 약 3조 2900억 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에서의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위해서는 2020년 정부 예산안(약 11조 9700억 원)에서 약 5조 9800억 원 증액한 17조 9500억 원을 요구했다.
전장연은 이날 결의대회를 시작으로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와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를 외치며 2020년 예산 쟁취를 위해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까지 행진을 진행했다. 이어 같은 날 저녁, 이들은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 중인 중구 나라키움저동빌딩에서 문화제를 한 뒤 1박 농성을 이어간다. 다음날(16일) 오전에는 청와대 앞 부양의무자 완전 폐지를 위한 농성장까지 행진한 뒤 문재인 대통령에게 공약 이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10시에 열 예정이다.
이가연 기자 gayeon@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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