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등급제 폐지된 거 맞아? ‘활동지원 본인부담금 인상’에 장애계 분노
보건복지부, “장애인 활동지원 받으려면 돈 내라”면서 올해도 본인부담금 인상 악행
‘인상은 활동지원사 처우개선때문’이라며 장애인과 활동지원사 분란 조장까지
등록일 [ 2020년01월03일 20시11분 ]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등은 3일 오전 11시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 건물 앞에서 장애인활동지원에 대한 본인부담금이 올해 들어 폭탄처럼 인상했다며 보건복지부를 규탄하고 본인부담금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장애등급제가 폐지되었지만, 장애인의 활동을 지원하는 서비스에 대한 본인부담금이 올해도 인상되자 장애인들이 본인부담금 폐지를 위한 활동지원법 개정을 촉구했다. 게다가 보건복지부가 최근 본인부담금 안내 문자를 잘못 발송하면서 갑작스럽게 오른 금액을 통보하여 장애인들의 분노를 샀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등은 3일 오전 11시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 앞에서 장애인활동지원에 대한 본인부담금 인상을 ‘폭탄’에 비유하며 보건복지부를 규탄하고 본인부담금 폐지를 요구했다. 더불어 작년 3월 13일, 장애인단체들이 본인부담금이 활동지원을 받는 장애인 당사자에 대한 심각한 인권침해라며 인권위에 집단 진정을 제출했지만, 1년이 다 되도록 권고가 나오지 않았다며 인권위에도 강력한 정책 권고를 촉구했다.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는 장애인들의 투쟁을 통해 생겨난 대표적인 제도 중 하나이다. 2007년 보건복지부의 시범사업을 거쳐 2011년 ‘장애인활동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으며, 장애로 인해 거동이 불편한 중증장애인의 일상생활과 자립생활을 지원하고 가족의 부담을 줄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현행 장애인활동지원제도는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닌 경우, 장애인 당사자가 본인부담금을 내야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또한 법률에서는 급여액의 최대 15%라는 상한액을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활동지원 기본급여에만 해당하고 추가급여는 상한액이 없어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는 구조이다.
그뿐만 아니라 본인부담금은 장애인의 소득이 0원이어도 함께 사는 가족의 소득에 따라 본인부담금이 산정되는 문제가 있다. 만일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독립된 세대가 아닌, 부모나 형제·자매와 함께 살고 있다면 가구소득으로 산정되어 가족의 소득을 기준으로 본인부담금을 책정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도한 본인부담금으로 인해 장애인 당사자가 활동지원 수급을 포기하게 되거나 생계가 어려워지는 상황까지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자 보건복지부는 2019년 7월 1일부터 장애등급제가 단계적으로 폐지됨에 따라 서비스종합판정표 도입으로 장애인 활동지원 급여산정 방식이 변경되자, 본인부담금 산정방식도 변경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존 ‘기본급여+추가급여’에서 ‘단일급여’ 체계로 변경하고, 본인부담금 부과기준을 단일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치로 추가급여에 상한액이 정해지지 않아 본인부담금이 계속 증가하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게 보건복지부의 설명이다.
- 등급제 폐지 후 자부담 부과기준 단일화… 그러나 인상된 상황 속출에 ‘잠정보류’
왼쪽부터 김상희 활동가가 받은 1차 문자(12월 26일), 2차 문자(12월 30일), 3차 문자(1월 3일) 내용 갈무리. 사진제공 김상희
그러나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여전히 본인부담금으로 생계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김 활동가는 얼마 전 보건복지부가 일방적으로 본인부담금 인상을 통보한 문자에 대해 “작년까지 본인부담금이 25만 5,000원이었는데, 올해 29만 2,300원으로 인상되었다는 문자를 받고 너무 무서웠다. 그런데 또 며칠 뒤에 금액에 착오가 있었다며 31만 2,300원으로 정정한다는 문자를 받았다”라며 당혹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 김 활동가는 “활동가로 살며 수입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자부담으로 인해 빚까지 떠안고 살고 있다”면서 “마치 국가에 월세를 내면서 얹혀사는 느낌이다”라며 분노했다.
보건복지부는 2019년 12월 26일, 장애인들에게 ‘본인부담금 부과기준 단일화’에 따른 2020년 본인부담금 조정 내용을 문자로 통보했다. 그러나 김 활동가가 받은 첫 번째 문자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본인부담금액인 25만 5,500원에서 29만 2,300원으로 오히려 증가했다. 3만 6,800원이나 인상된 본인부담금액에 놀라기도 잠시, 보건복지부는 12월 30일에 다시 두 번째 본인부담금 알림 문자를 보냈다. 이번에는 본인부담금 부과기준 단일화 조치가 ‘잠정보류’ 됨에 따라 본인부담금을 재공지한다는 정정 문자였지만 김 활동가의 본인부담금은 31만 2,300원으로 대폭 인상되었다. 1차 문자의 본인부담금보다 무려 2만 원이 더 오른 것이다.
게다가 기자회견이 끝난 뒤 오후 1시 45분경, 김 활동가는 보건복지부로부터 세 번째 재정정 문자를 받았다. 이번에는 26만 5,200원으로 변경되었다. 즉, 김 활동가의 2020년 본인부담금액은 12월 26일부터 약 일주일동안 29만 2,300원(1차 문자)→ 31만 2,300원(2차 문자)→26만 5,200원(3차 문자)로 총 세 차례나 변경된 것이다. 만일 더 이상 본인부담금이 변경되지 않는다면 김 활동가의 본인부담금은 작년보다 9,700원 높아졌다.
-보건복지부 “자부담 인상된 장애인은 종합조사신청하라… 보류 기간은 미지수”
보건복지부는 비마이너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러한 혼란이 발생한 이유에 대해 “본인부담금 부과기준에 단일화한 조치를 적용하여 첫 번째 문자를 보냈는데, ‘본인부담금이 너무 많이 나왔다’는 민원이 있어 앞으로의 방안 논의를 위해 잠정보류 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두 번째 문자에서는 왜 또다시 본인부담금이 증가했는지를 묻자 “단일화된 부과기준의 잠정보류를 알리면서 기존 본인부담금 기준인 5%를 적용했어야 했는데 잘못하여 높게 적용했다”고 해명했다. 따라서 이를 다시 정정하면서 세 번째 문자를 보냈다는 설명이다.
이어 보건복지부가 보낸 첫 번째 문자에서 본인부담금이 인상된 이유를 묻자 “장애등급제 폐지 후 새로 도입된 종합조사를 받지 않은 장애인의 경우 인상되었을 수도 있다”라고 밝혔다. 김 활동가 또한 종합조사를 받지 않아 첫 번째 문자 알림에서 본인부담금이 인상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면서 보건복지부는 “본인부담금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종합조사를 신청하면 된다”고 권고하기도 했다. 잠정보류를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보건복지부, ‘활동지원사의 처우개선’ 핑계로 장애인 본인부담금 인상해 분란 조장?
기자회견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기자회견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은 이번 보건복지부의 세 차례에 걸친 문자 통보를 ‘폭탄’에 비유했다. 박 이사장은 “활동지원서비스 제도화 투쟁을 할 때 자부담을 폐지하라고 목소리 높였지만, 투쟁을 지속하기 힘들어 상한선을 매긴 결과에 만족해야 했다. 그런데 상한선이 커지고 커져 어느새 본인부담금만 월 30~40만 원 내야 한다”라며 끝까지 투쟁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를 밝혔다. 이어 “본인부담금에 상한선을 도입하던 복지부가 활동보조서비스 단가가 인상되자 본인부담금 폭탄을 내놓았다”라며 “이 폭탄을 가지고 보건복지부로 가서 힘차게 투쟁하자”고 소리쳤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 또한 “활동지원제도는 부가적인 서비스가 아닌 기본적 편의지원이며 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포함되어 있다”라면서 “작년 3월, 본인부담금 폐지를 촉구하며 인권위에 진정을 넣었지만 아직 답이 없는 상황에서 올해 본인부담금이 폭탄처럼 떨어졌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김 국장은 “인권위의 강력한 권고를 기다리며 내년에는 본인부담금 없이 활동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투쟁하자”고 밝혔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이번 본인부담금 변경 안내 문자에서 ‘본인부담금 조정은 활동지원사 처우개선을 위한 활동보조 시간당 단가 인상(12,960원→13,500원)에 따른 조치’라고도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은 보건복지부가 장애인과 활동지원사와의 분란을 조장하는 것처럼 해석될 수 있어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이가연 기자 gayeon@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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