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들과 함께한 시민들 “매드프라이드, 변화의 시작 되어야”
제1회 매드프라이드 서울, 노란나비되어 광장을 행진한 사람들
당사자뿐만 아니라 기자, 전문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해
등록일 [ 2019년10월28일 12시51분 ]
매드프라이드가 열린 지난 26일, 이탈리아 정신보건혁명의 상징 파란목마 마르코 까발로가 광화문광장에 나타났다. 그 옆에 노란 나비 한 마리가 있다. 사진 박승원
26일 광화문광장 옆 세종로공원 입구, 커다란 거울 위에 ‘존재 선언’을 알리는 문구가 쓰여 있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다.”
그 문구에 다가갔을 때 거울에는 ‘내가’ 비치고, 나는 ‘우리’라는 글자에 포개진다. 단순한 장치 하나에 나와 나 아닌 것들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제1회 ‘매드프라이드 서울’이 그곳에서 열리고 있었다. 총 15개의 정신장애인 당사자 개인·단체의 부스와 의료지원, 법률상담 등의 부스가 입구에서부터 줄지어져 있다. 공원 안쪽에는 편안하게 앉아 쉬며 차와 다과를 즐기는 ‘세로토닌존’도 마련되어 있었다. 세로토닌은 일명 ‘행복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오후 1시경, 세종로공원에 윤도현밴드의 ‘나는 나비’ 노래가 울려 퍼진다. 매드프라이드에 온 사람들로 붐비는 세종로공원 중심에 환자복을 입은 정신장애인들과 자원봉사자 50여 명이 함께 ‘나는 나비’ 노래에 맞춰 춤을 춘다. 제1회 ‘매드프라이드 서울’을 알리는 플래시몹이다.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거야
노래하며 춤추는 나는 아름다운 나비
_ 노래 ‘나는 나비’ 중, 윤도현밴드
이어 무대에서는 연극 ‘거리를 나온 하얀방’ 공연이 펼쳐진다. 정신장애인들이 정신병원에서 겪은 강제치료, 강제투약을 풍자적으로 담은 20분가량 되는 짧은 공연이다. 공연 마지막에는 ‘혐오, 강제입원, 편견, 불신, 직업제한’ 등 정신장애인을 억압하는 현실이 장벽처럼 쌓인다. 그 위로 나비 하나가 펄럭이고 이내 곧 장벽은 무너진다. 사람들은 나비가 되어 거리로 나선다. 매드프라이드에 참가한 300여 명의 사람들은 노란 나비의 날갯짓을 따라 함께 광화문광장으로 향한다.
그렇게 매드프라이드의 하이라이트 ‘베드푸쉬(BED PUSH)’가 시작됐다. 환자복을 입은 정신장애인들이 맨 앞에서 병원용 침대를 민다. 광장으로 침대를 밀고 나가는 베드푸쉬는 강제입원, 강제치료 중심의 폭력적인 정신건강 의료시스템의 현실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한 퍼포먼스다. 이날 몇몇 사람은 거울박스를 얼굴에 쓰기도 했다. 사면이 거울로 만들어진 거울박스는 곁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거울에 담아 비춰냈다.
병원용 침대와 함께 이탈리아 정신보건혁명의 상징 ‘마르코 까발로’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마르코 까발로는 현재는 ‘정신병원이 없는 나라’로 알려진 이탈리아에서 지난 1973년 정신장애인들이 정신병원 폐쇄 운동을 시작하며 만든 파란색 목마로 정신장애인들의 자유를 의미한다.
몇몇 사람들은 “우리는 정신장애인입니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이길 원합니다” 등의 피켓을 들고 행진에 참여했다. 또한,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다”고 외치며 바로 이곳에 정신장애인들이 존재함을 바깥의 사람들에게 알리기도 했다.
이날 행진에는 300여 명의 사람이 함께했다. 어떤 사람들이 이곳에 온 걸까. 매드프라이드 에 참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26일, 광화문광장 옆 세종로공원 입구에 커다란 거울이 세워져 있고 그 위에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 박승원
- ‘정신질환자는 위험하다?’… “다양한 ‘다름’을 지닌 사람들일 뿐”
대학을 졸업하고 정신건강사회복지사 과정에 있는 안예슬 씨(가명, 25세)는 매드프라이드에 참석하기 위해 이날 대구에서부터 올라왔다. 안 씨는 대학에서 정신건강 관련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자연스레 정신건강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안 씨는 “종종 정신건강 캠페인을 나갈 때 오엑스(OX) 퀴즈를 하는데 ‘정신질환자는 위험하다’는 문항이 꼭 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O를 선택하는데 이야기 나누다 보면 그러한 편견이 뉴스를 통해 굳어져 있는 걸 확인하게 된다. 언론 보도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정신장애인분들이 오히려 더 사회로 못 나오는 것 같다. 그렇기에 오늘의 축제가 의미 있다”며 소회를 전했다.
이날 매드프라이드에 참석한 직장인 권나은 씨(29세)도 언론보도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했다. 권 씨는 “언론은 정신장애이슈를 클릭 수를 위한 걸로 생각하는 것 같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모든 일의 인과관계를 ‘조현병 때문이다’로 결론 짓는데 사건의 인과관계는 다양하지 않은가”라면서 “현재의 언론 보도는 분명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권 씨는 이날 정신장애인들이 공연한 ‘거리로 나온 하얀방’을 특히 인상 깊게 보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까지 봐온 연극은 무대 위에서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것들이 많았는데, 당사자들의 연극은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이 연극을 통해 자기 이야기를 하는데 오늘 연극이 연극의 본질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충격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거울박스에 대해서도 “정신장애 문제에 관심이 많지만 여전히 편견이 남아 있다. 그런데 거울을 보는 순간 (거울에 내 얼굴이 비치니) 내 태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고도 밝혔다. 권 씨는 “다음번엔 서울시청에서 더 크게 하면 좋겠다”며 매드프라이드의 성공을 기원했다.
이하늬 씨(34세)는 현재 주간지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이날 이 씨는 취재 기자가 아닌 참여자로 매드프라이드에 왔다. 정신장애 이슈를 주로 취재해온 이 씨는 “너무 궁금해서 오게 됐다”며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이 씨는 그동안 취재 과정에서 쌓인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처음에는 계속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 쓰려고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다름’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면 분명 다르니깐.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성의 범주 안에 정신장애를 넣으려고 했던 게 저의 기존의 취재 방식이라면, 지금은 사회가 규정한 정상성의 범주를 넓히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우리는 실제 다름을 느끼잖아요. 그런데 그게 특정 정신질환 때문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요. 조현병이 있어도 다 똑같지 않고 다양하잖아요. 조현병이 없어도 폭력적인 사람이 있어요. 흑백이 아니라 나뭇가지처럼 다양한 사람이 있는 거예요.”
이 씨는 이날 매드프라이드 행사와 관련해 “베드푸쉬를 가장 기대했다. 즐겁게 뛰면서 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서 조금 아쉽다”면서 “다음번에는 조금 더 넓은 장소에서 하면 좋겠다”고도 전했다.
환자복을 입은 재규어 씨가 배드푸쉬 행진을 하는 모습. 사진 박승원
- 매드프라이드 보러 오랜만에 외출한 정신장애인 “약간 힘이 생겨요”
이날을 누구보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사람이 있다. 바로 매드프라이드를 준비한 안티카 단원들이다. 재규어 씨(51세, 가명)는 플래시몹과 연극 ‘거리로 나온 하얀방’, 매드퍼레이드 등 행사 전반에 열성적으로 참여한 정신장애인 당사자 중 한 명이다. 그는 20대 때 정신장애가 발병하여 강제입원 당했다. 소감을 묻자 그는 “기분 좋았어요”라고 말했다.
작년부터 올해 정신장애인을 공포스러운 존재로 그리는 보도들이 쏟아졌다. 그러한 언론 보도에 그는 “슬퍼요”라면서 “그럴 때면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따라다니는 게 느껴져 공포스럽다”고 토로했다.
그는 무엇보다 “자유롭게 지내고 싶다”며 “‘태웅이’가 나를 따라다닌다”고 했다. 태웅이는 그에게 들리는 환청의 이름이다. 그는 인터뷰 중에도 내내 환청이 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재규어 씨는 “태웅이가 나를 해방시켜줬으면 좋겠다”면서 “태웅이는 어떤 때는 즐거운데 어떨 때는 나를 슬프게 하고 죽고 싶게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은 힘든 과정에서도 자신들의 속도에 맞춰 정성스레 매드프라이드를 기획하고 준비했다. 이러한 용기는 오랜 시간 집에만 갇혀있던 정신장애인들을 바깥으로 나오게 하는 힘이 되었다.
매드프라이드에 참여한 정현석 씨가 이동수 화백이 그린 자신의 캐리커처를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정현석 씨(42세)가 그랬다. 그는 1년여 만에 밖으로 나와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모처럼 바깥 공기를 쐤다. 대학교 1년이던 스무 살 여름방학, 입대를 앞두고 정신장애가 발병한 정 씨는 그 후 10년간 집에만 있었다. 어머니의 지원으로 하루에 한두 시간씩 일을 하게 되면서 다시 사회로 나오게 됐고, 이후엔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서 7년간 일했지만 ‘장애인복지일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후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설립되면서 그곳에서 정신장애인 당사자 활동가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러나 1년 전, 그곳을 나오면서 그는 다시 집에 갇혔다. 정 씨는 “활동가로 있을 때는 힘이 넘쳤는데 집에만 있으니 10년 전의 나로 되돌아가는 느낌이었다”면서 “의욕도 없고 약만 먹고 컴퓨터 게임만 하며 지냈다”고 말했다.
정신건강에 대한 정보가 없던 시절,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귀신에 씌었다’며 두 번이나 굿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야기를 전하며 그는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힘들면 꼭 정신과 상담을 받았으면 한다”면서 “정신건강에 관한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면 좋겠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오늘 매드프라이드에 오니 물 못 먹고 시들어있던 나무에 물이 들어가서 약간에 힘이 생기는 것 같다”면서 “매드프라이드가 퀴어퍼레이드처럼 전국적으로 퍼져나가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 “오늘의 자리는 30년 만의 결실, 끝이 아닌 시작이 되어야”
이날 매드프라이드에는 오랜 시간 정신장애운동에 함께해온 이들도 많이 참석했다.
염형국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2016년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정신보건법 강제입원조항 헌법소원에 함께했다. 염 변호사는 “장애문제를 많이 다루는데 장애인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게 정신장애인이다”면서 “특히 강제입원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는데 일상에서도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힘 실어주고자 나왔다”고 밝혔다.
염형국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와 신영전 한양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 사진 강혜민
염 변호사는 이날 신영전 한양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와 함께 배드푸쉬 행진에 함께했다. 취약계층 건강에 대한 연구를 하는 신 교수는 2009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한 ‘정신장애인 인권보호와 증진을 위한 국가보고서’와 과거 ‘정신보건법’(현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신 교수는 “변화의 시작, 바로 여기서부터!(Right Here, Right Now)"라고 손수 적은 손피켓을 들고서 이번 매드프라이드 슬로건인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다“를 시민들과 외치며 힘차게 행진했다.
신 교수 또한 “취약계층 연구를 쭉 해왔는데 그중 가장 열악한 사람이 정신장애인이다. 본인도 지치고 가족도 지치고, 그 와중에 본인의 정치적 주장은 지지받지 못한다”면서 “정신보건정책이 가장 어려운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당사자운동의 확장을 반기면서도 “당사자에게만 책임을 몰아가서는 안 된다”면서 “‘당사자’라는 말이 현재는 정신질환자와 비질환자를 구분하는 의미로 쓰이는데, 당사자/비당사자라는 말이 필요하지만 때로는 경계 짓는 말이 되기도 한다. 앞으로 이러한 경계 없이 나아가야 한다”고도 말했다.
신 교수는 “오늘의 자리는 지난 30년간의 결실이다”면서 “그만큼 오늘의 자리가 너무 좋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다. 시작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http://www.beminor.com/detail.php?number=13978&thread=04r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