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들어 시민사회운동은 급격한 쇠퇴기에 접어들었지만, 2001년 장애인이동권 투쟁으로 시작된 ‘변혁적 장애인운동’은 지난 20년간 놀라운 성과를 거둬들였다. 이들은 ‘장애에 대한 사회적 개념’을 이야기하며, 장애인 차별의 원인은 ‘장애가 있는 신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있다’고 외쳤다. 즉, 휠체어 탄 사람이 버스를 타지 못하는 것은 그가 장애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휠체어 탄 사람도 탑승할 수 있는 저상버스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사회의 문제이며, 장애인이 수용시설에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살아갈 수 있는 복지서비스와 소득보장 정책 등 그 모든 것들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증장애인들은 비장애인과 차별 없이, 평등하게 지역사회에서 한 사람의 존엄을 보장받으며 살아가기 위한 ‘그 모든 것들’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장애인운동은 이 사회의 기본값이 비장애인 중심사회라는 것을 일깨우며 사회의 기본값을 뒤흔드는 싸움을 해왔다.
그 싸움이 올해 20주년을 맞이했다. 여전히 충분하진 않지만 대부분의 지하철 역사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저상버스가 일부 도입됐다. 활동지원서비스와 장애인연금으로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이는 장애인수용시설 전면 폐쇄를 외치는 탈시설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20년간의 놀라운 변화의 시작은, 대부분의 처음이 그러하듯 초라했다. 싸움을 시작할 어떠한 종잣돈도 없던 시절, 그들이 가진 것은 고작 ‘불구’로 낙인찍힌 몸뚱아리 하나였다. 돈도 ‘빽’도 없는, 불쌍하고 때로는 ‘병신’ 취급받던 이들은 지하철 철로를 점거하고, 장애인이 탈 수 없는 버스를 낚아채서 쇠사슬로 자신의 몸을 그곳에 묶었다. 점거는 지역사회에 존재하지 않던 ‘장애인의 자리’를 만들어내는 중증장애인들의 주된 싸움 방식 중 하나였다. 그들은 “권리들을 가질 권리”를 요구하며 배제와 차별의 근거가 됐던 불구의 몸, 바로 그 신체로 세상을 향해 싸움을 걸었다.
버스를 탈 수도, 식당에 밥 먹으러 갈 수도, 학교에 배우러 갈 수도 없는 것이 차별임을 깨닫고 문제제기를 한 사람, 장애가 있는 내가 문제가 아니라 장애가 있는 사람을 배제하는 사회가 문제임을 알아챈 사람, 이는 사회 전체를 바꾸는 일이었기에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내 곁의 사람들을 조직하여 함께 해야 하는 일임을 깨달은 사람. 그들이 ‘싸움의 시작’을 만들어냈다.
때론 시작을 하는 것, 그 ‘다음’을 만들어내는 것은 자연스러움이 아닌 의도된 사건이다. 그것은 의지와 결단, 우연이 겹쳐졌을 때야 가능하다. 비마이너가 올해 만난 여섯 명의 싸움꾼들(박길연, 박명애, 박김영희, 박경석, 노금호, 이규식)은 그러한 사건을 일으킨 자들이다.
비마이너는 이제까지 주로 사건을 보도해왔으나, 이제 그 ‘사건을 일으켰던 사람들’의 삶을 쫓아가 보려 한다. 이 저항서사를 통해 기록되지 않음으로써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었던 소수자들의 삶과 장애인운동사를 기록하고, “차별받은 존재가 저항하는 존재가 되는 일”(홍은전, 『그냥, 사람』)을 이 사회의 기억으로 남기고자 한다.
인터뷰이는 지난 20년간 활동해온 장애인단체 대표단들을 중심으로 성별과 지역적 안배를 고려해 선정했다. 그러나 시간과 자원의 한계로 인해 충분히 많은 이들을 만나지 못했다. 우리는 장애인운동을 만드는 많은 훌륭한 활동가들을 알고 있다. 이 기록이 ‘다음’을 초대하는 시작이 되길 바란다.
이들은 결코 홀로 존재하지 않았다. 분명 그 자신이기에 가능했던 부분들도 있었으나, 수많은 실패와 이별, 절망 속에서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함께하는 ‘동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노라고, 고백한다. 그렇기에 이것은 지난 시간을 함께했던 동지들과 만들어낸 빛나는 ‘우리의 기록’이기도 하다. 노래로 치자면,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합창쯤 될까.
함께 함이란 다음을 만들어내는 행위이고, 이것은 나의 행위에 당신이 응답했을 때에야 가능했다. 휠체어를 굴리며, 때론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갈지자로 휘청이며, 비관하면서도 보다 나은 내일을 갈망했던 ‘전사들의 노래’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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