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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하는 통제와 차별…가부장적, 비장애중심적 가해와 피해 인식 넘어서야

 

장애여성이 겪는 폭력은 일상적이며 제도적이다. 그동안 묵인돼온 차별과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드러내는 것에서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연합뉴스

 

여성살해 사건 판결을 검토하다보면, 복수의 가해자가 한 명의 피해자를 집요하게 학대하고 이용한 끝에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들을 볼 수 있다. 장애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다. 고문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장애여성의 삶과 몸은 ‘가시화’된다. ‘장애’를 가진 ‘여성’이란 이유로 몸의 주권마저 빼앗긴 이들이 겪는 일상과 제도의 폭력을 들여다보지 않고선 죽음이란 극단적 모습으로 나타나는 폭력도 막을 수 없다. _편집자

 

“나… 오늘 못 가요. 너무 늦어서 안 된대요. 가고 싶은데 안 돼요.”

 

전화기 너머에서 작은 한숨이 들린다. 익숙한 체념의 한숨이다. 밤이 늦어서, 집이 멀어서, 코로나19가 위험해서 다양한 이유로 장애여성들은 집 밖에 나오지 못한다. 30대 중반, 삶의 중턱을 올라가는 나이쯤은 가볍게 무시된다. 반말을 듣는 일상, 현관문을 나서는 일조차 허락받아야 하는 일상. 그것이 장애여성들의 하루다. 외출을 허락받아야 하는 대상은 있지만 동료 시민은 없다. 불평등이 일상인 관계, 이것이 장애여성들이 발 딛고 있는 사회다.

 

반말, 외출 허락… 불평등이 일상

 

‘장애여성공감’에서 만나는 장애여성들은 일상적으로 차별을 경험한다. 차별은 ‘보호’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성폭력 사건을 지원하다가 만난 장애여성은 사건 종결 이후, 법적 보호자에 의해 장기간 외출을 금지당했다. 피해 장소를 재방문한다는 이유였다. 다른 장애여성은 채팅앱을 한다는 이유로 매일 휴대전화를 감시당한다. 가해자는 당당하게 자기 삶을 살아가지만 피해자는 삶을 더욱 감시받고 통제받는다.

 

극단적인 빈곤과 폭력에 노출된 몇몇 장애여성만의 경험이 아니다. 학교, 복지관, 직장 그리고 각자의 주거공간에서 장애여성은 보호와 자원을 지원하는 이들에게 많은 순간을 통제당한다. “자위하고 소란 피우며 문제행동을 자꾸 만들어요. 중단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해요.” “우리 ○○은 혼자 거기 못 가요. 혼자 오지 말라고 이야기해줘요.” 지원주택 등의 거주공간에서 성적 권리는 문제행동, 즉 교육으로 수정해야 할 문제행동으로 규정된다. 자유로운 외출을 가능케 하는 지원과 조력을 고민하지 않고 안전을 이유로 무엇이나 금지된다. 이러한 통제의 굴레는 사적 관계에서만 발현되는 것이 아니다.

 

제도는 체계적으로 장애여성의 삶을 억압한다. 가구소득을 중심으로 묶인 기초생활수급권은 장애여성의 독립을 지원하지 않는다. 가정폭력·성폭력 피해를 당한 경우조차 가해자가 포함된 가구소득을 기준으로 장애여성의 주거지원이 결정된다. 장애인 세제혜택과 청약점수를 얻기 위해 빼앗아간 명의는 그 자체가 족쇄가 되어 장애여성의 탈가정을 가로막는다. 결코 쓸 수 없는, 내 명의의 소득과 재산이 있기에 그 장애여성은 지원대상에서 제외된다.

 

‘열등처우’(국가지원을 받는 빈곤층이 최하층 노동자의 생활수준을 넘어서면 안 된다는 복지 방침) 중심의 지원과 국가의 책임을 가족 단위에 떠맡기는 구조이기 때문에 장애여성은 차별과 폭력이 발생하는 그 공간에서 내내 ‘보호’받아야 한다. 심지어 친족성폭력 피해 장애여성에게 한 지방자치단체 사례관리팀은 ‘가해자와 함께 살 것’을 제안했다. 위기 상황에서 관리되지 않기 때문에 장애여성에게 독립적인 주거지원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동의 없는 피임 시술, 외출 금지는 위험에서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제시된다. 당사자의 의사는 중요치 않다. 장애여성은 스스로를 돌보고 지킬 능력이 없는 무능력한 존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인 장애여성은 가족의 돌봄과 보호를 통해 삶을 이어나갈 것이라 생각된다. 장애여성 또한 이 집단을 벗어난 삶을 상상할 수 없다. 집 안과 밖에서 사회는 장애여성에게 늘 말하지 않는가. “하지 마! 가지 마! 먹지 마! 혼자선!”

 

그렇기에 일상의 차별과 폭력을 익숙하게 견디고 침묵하도록 강제당한다. 사회 어디를 가도 보호라는 이름의 통제와 차별을 경험할 뿐이다. 그러나 ‘보호하는/받는’ 사람이라는 위계, 평등하지 않은 권력을 바탕으로 형성된 관계는 위험하다. 차별과 인권침해는 순식간에, 우발적으로, 무심코, 일상적으로 발생한다. 다만 폭력으로 명명되지 않고 은폐될 뿐이다.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 허리’는 각자의 몸을 통해 무대 위에서 장애여성의 삶과 주체성을 전한다. 춤추는 허리의 공연 ‘빛나는’의 한 장면. 장애여성공감 제공

 

강도 높은 폭력을 입증해야만

 

폭력은 제도 내에서 선별된다. 몸이 부러지거나 큰 상해를 입거나 그리고 그것을 증명할 수 있을 때 제도는 비로소 폭력을 ‘피해’로 인정한다. 장애여성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부딪힌 걸림돌 중 하나가 수급권자, 피해자 등 법적·제도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지원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지원기관이 위기 상황, 긴급함에 대한 판단, 물리적 폭력의 중한 정도(학대 강도) 등을 근거로 지원 여부를 결정한다. 긴급성과 학대의 강도는 자의적으로 판단된다. 우선순위에 밀린 사소한 폭력 피해는 지원대상이 될 수 없다. 현재 장애인복지법에 근거해 가장 유효한 학대 지원기관인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차별 사안을 해결하는 주된 방법은 사법적인 신고와 지원이다. 뒤집어보면 법률에 근거한 처벌 기준을 중심으로 사건이 지원되는 것이다. 이 지원 기준에서 많은 장애여성의 폭력과 차별 경험이 탈락된다. 가족의 수급비 관리(를 이유로 한 편취), 노동현장에서 차별 경험, 지원주택 내에서 성적권리 침해 등의 사안은 지원대상으로 선택되지 않는다. 경미한 침해로, 사소한 일로 치부돼 묻힌다.

 

사안의 긴급성과 폭력 강도에 근거해 기관의 지원을 받는 데 성공한다면 그다음엔 더 높은 법적 기준을 넘어야 한다. 장기간 가족의 무시와 방임, 경제적 착취를 경험한 어떤 중증장애여성은 어렵게 탈가정을 시도했다. 가족을 벗어나서야 장애인 학대 및 횡령 등의 혐의로 폭력 중단과 가해자 처벌을 요청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증거불충분과 중증장애인을 돌보는 가족의 노고를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폭력은 강도가 높아야 하고 동시에 입증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언어장애가 있고 문자 소통이 어려운 중증장애여성은 장기간의 가해자 행위를 제도 내에서 증명하기 힘들었다. 집이라는 사적 공간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차별에 관한 한, 동조하고 방관하는 자만 있을 뿐 증언자는 없다.

 

복잡한 피해, 납작한 법

 

그러니 장애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은 직접적이고, 외부에 노출되고, 증명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폭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동시에 가해자의 차별과 폭력이 적절한 보호와 지원이 아님을 증명해야 한다. 일상의 차별과 인권침해는 법으로 다스리기 어려운 것이 많다. 장애여성이 신고 등을 통한 법률적 해결을 원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가족과 연인 등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이라면, 상대를 ‘가해자’로 명명하기엔 장애여성이 처한 맥락은 비장애인의 경우보다 한층 복잡하다. 욕하고 무시하는 상대, 또한 나를 돌보고 함께 살아주고 화내고, 사랑한다 말해주는 상대와 단절될까 두렵다. 고립된 존재로 타인에게 의존할 것을 강요받는 장애여성이 어렵게 자신의 차별과 폭력 중단을 말할 때, 지원기관과 제도는 납작하게 묻는다. “아, 그래서 신고할 거예요? 증거 있어요?”

 

장애여성의 차별적 위치성과 삶의 서사를 읽지 못하는 사회에서 폭력 피해를 증명하는 길은 ‘장애인다움’과 ‘피해자다움’이라는 수행을 반복하도록 강요받는 과정이다. 사회는 극단적인 폭력을 선별하면서, 선별된 폭력을 또다시 장애여성의 삶으로 전시한다. 기존의 가부장적, 비장애 중심적인 사법적 판단을 재생산할 뿐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장애여성의 탈시설/탈가정, 독립 지원, 지역사회 관계망 구축 등 시설화된 삶을 해체하기 위한 사회적 대안은 중요한 의제로 자리잡기 어렵다. 장애여성이 피해를 입증하는 방식만이 아니라, 권리를 주장하는 방식으로 어떻게 인권침해 경험을 말할 수 있을까. 지원제도는 어떻게 당사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방식으로 변화할 수 있을까. 그 시작점은 장애여성이 겪는 차별과 폭력 경험이 어떤 지배질서 가운데 발생하는지를 드러내는 데 있다. 그래야 한명 한명의 피해 경험이 흩어지지 않고 사회적 차별을 변화시킬 근거로 축적된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차별을 차별로 명명하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차별을 차별로 부르는 것부터

 

그렇기에 현재 한국 사회의 주요한 이슈인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은 너무나 중요하다. 그동안 호명되지 못했던 권리를 이야기하고 묵인돼온 차별과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 극악한 폭력의 피해자,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만 사회에 ‘전시되는’ 대신, 일상의 차별과 제도 변화를 위해 함께 싸우고 살아가는 동료시민으로서 장애여성의 관계맺기가 시작될 수 있다.

 

유진아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폭력적인 배우자와 결별하는 과정에서 여성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한겨레21>의 ‘페미사이드 500건의 기록’ 특별 웹페이지(stop-femicide.hani.co.kr)에 접속해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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