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를 끼고 두 해째 살아가고 있습니다. 2020년 12월 말, 서울 송파구에 있는 장애인거주시설 신아원에서 거주인 114명 중 56명(49%)이 집단감염되었습니다. 장애계는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서울시에 코호트 격리 중단과 긴급탈시설을 요구했으나, 이 요구는 끝내 수용되지 않았습니다. 지난 11월 1일 ‘단계적 일상회복’ 이후 코로나 확진자는 연일 5000명을 상회하고 있으며, 오미크론 등 변이 바이러스가 지속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코로나는 종식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확신으로 변하는 일상 속에서 당신은 안녕하신지, 안부를 묻습니다.
코로나 2년 차지만, 자가격리 되거나 확진되었을 때 장애인에 대한 지원은 여전히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최근 병상이 부족하여 재택치료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데요, 중증장애인의 경우 일상을 지원하는 활동지원서비스가 반드시 제공되어야 하지만 지원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가 재난 약자가 되는 시대, 우리는, 나는 과연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생존에 대한 두려움이 새해와 함께 저벅저벅 걸어 들어옵니다.
올해를 마무리하며 비마이너 기사를 통해 2021년 장애계를 돌아봤습니다. 탈시설의 전선을 긋고 새로운 노동 개념을 제시하며 비장애중심사회를 멈춰 세웠던,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시간이었습니다.
- 20년의 투쟁, 성취한 것과 아직 성취하지 못한 것
올해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 20주년입니다. 2001년 1월, 오이도역에서 휠체어 리프트 추락참사를 시작으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촉발되었습니다. 지난 20년간 장애계의 투쟁에 대한 답으로 정부와 지자체는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겠다’며 수많은 약속을 했으나 그 약속은 번번이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이미 서울시 내 전 역사에는 ‘1역사 1동선’ 엘리베이터가 설치돼야 했으나 여전히 22개 역사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으며, 올해 기준으로 42% 달성해야 하는 시내저상버스 도입률은 전국적으로 27.8%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 운영책임은 지자체에 떠맡겨져 있어 정부는 책임지지 않고, 시외이동권 보장 또한 요원합니다.
그래서 올 한해 장애계는 또다시 지하철과 버스를 점거하며 투쟁했습니다. 그러나 과거와는 내용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이동권 보장과 함께 장애계는 교육받을 권리, 노동할 권리, 지역사회에서 살 권리 등 삶에 필요한 모든 권리를 요구했습니다. 그러한 권리를 담은 장애인권리보장법·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요구하는 여의도 이룸센터 앞 농성도 벌써 288일째(28일 기준) 이어지고 있습니다.
장애계 요구의 변화는 성취된 것과 아직 성취되지 않은 것을 드러냅니다. 올해 장애계는 지난 20년간의 투쟁의 성과를 손에 쥐고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또렷히 초점을 맞추며 전선을 만들었습니다.
- 탈시설의 전선을 만들다
올해 봄, 장애인수용시설 두 곳이 탈시설-자립생활을 목표로 거주인을 모두 탈시설 시킨 후 문을 닫는 전례 없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서울 도봉구의 ‘도란도란’(3월 31일 폐지)과 김포 ‘향유의집’(4월 30일 폐지)이 바로 그곳인데요, 시설폐지는 오랜 탈시설 운동의 성과입니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시설폐지는 노동자들에겐 해고이기에 촘촘한 고용승계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시설 내 노동자들의 반대에 부딪히게 됩니다. 두 시설은 실제 고용승계 문제를 둘러싸고 법인과 노동자 간에 극심한 갈등을 겪었습니다. 현재 대구 청암재단도 이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죠.
만약 이러한 갈등을 모두 시설이 감당해야 한다면, 이를 무릅쓰고 탈시설 하겠다고 나서는 시설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나 지난 8월 2일 정부가 발표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아래 로드맵)’에 이와 관련한 구체적 내용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로드맵에는 정부의 탈시설 의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우선 로드맵 수행 기간이 20년으로 매우 길고, 이마저도 탈시설 의지가 있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합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시설 폐쇄가 아닌 공동생활가정과 같은 소규모 시설로 쪼개거나, 하루 24시간 지원이 필요한 최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주거서비스 제공기관으로 시설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사회는 끊임없이 개인의 자립능력만을 따져 자립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장애인은 솎아내고, 자립가능한 장애인에게만 탈시설의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자립은 ‘개인의 능력’에 달린 문제이기에, 지역사회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핑계로 한 인간이 존엄하게 살기 위해 부담해야 할 사회적 책임을 면제받습니다. 지역사회 복지가 충분하지 않은 사회에서 시설에 대한 수요는 끝이 없기에 더 많은 시설,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하여 장애인 자립생활 예산은 늘 한계에 부딪히고, 부족한 지역사회 복지서비스는 시설의 필요를 합리화하는 근거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의 모습이며, 모든 시설의 폐쇄가 탈시설의 전제로 명시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탈시설만이 ‘시설의 필요’와 ‘준비되지 않은 지역사회’라는 뫼비우스의 띠를 끊어낼 수 있습니다.
장애인 자녀를 시설에 보낸 부모는 “탈시설은 사형선고”라며 울부짖고, 수많은 장애인수용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천주교는 종교의 윤리를 배반하고 탈시설을 대놓고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올 한 해 탈시설은 ‘논란거리’가 되었고, 하나의 전선이 되었습니다.
- 자본의 이익 창출 아닌 ‘공공의 가치 창출’을 노동으로 규정하다
탈시설에서 논쟁이 되고 있는 사람은 중증발달장애인입니다. 현재 시설에 있는 장애인의 80%가 이들이라고 합니다. 자본주의 탄생 과정에서 자본에 이윤을 가져다줄 수 없는 자, 즉 “착취당할 자격조차 없는” 자, 노동불가능한 신체를 가진 이들이 장애인으로 분류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합법적으로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되며,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합니다.
지난해 서울시 시범사업으로 시작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아래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기존의 이윤 중심, 생산성 중심의 노동 개념에 균열을 냅니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노동시장에서 배제되어 무능력한 존재로 낙인찍힌 최중증장애인을 정부와 지자체가 고용하여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살아갈 수 있도록 기반을 닦는, ‘공공의 가치 창출’을 목표로 합니다. 이들은 권리옹호, 문화예술, 인권교육 활동을 통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홍보하고 정부의 협약 이행을 모니터링합니다. 현재 이 일자리는 올해 서울시와 경기도에서 시행되었고, 내년에는 전남, 전북, 강원 등 더 많은 지자체에 도입될 예정입니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장애계는 중앙정부에 이를 요구하고자 지난 15일,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 창립총회를 열고 전국화를 도모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일만이 노동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과 비교해본다면, 자본의 이윤 창출이 아닌 ‘공공의 가치 창출’을 목표로 둔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노동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그야말로 혁명적인 일자리입니다. 비장애중심주의를 허무는 활동이 노동으로 인정받는다면 장애에 관한 개념, 나아가 장애인-비장애인과의 관계에도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요?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바로 그러한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입니다.
내년에는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마무리 단계로 소득·고용에서 장애등급이 사라집니다. 장애계가 외치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의 노동 개념이 부디 반영되길 희망해봅니다.
- 이동권 투쟁 20주년, 비장애중심사회를 멈춰 세우다
지하철 연착 투쟁을 하는 날이면 시민들은 불편을 호소하고 언론은 이러한 목소리에 힘을 실어 전합니다. 만약 이들이 왜 20년째 이렇게 투쟁하는지, 언론이 장애인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좀더 크게 전한다면 변화는 좀더 일찍 도래하지 않았을까요?
장애인들의 투쟁은 장애인을 버려두고 홀로 내달렸던 비장애인중심사회를 붙잡는 손이기도 합니다. 장애인이 버려진 그곳에 비장애중심주의와 자본의 이익 추구를 노동이라고 불렀던 자본주의, 능력주의사회가 있습니다. 비마이너는 내년에도 비장애중심주의에 균열을 내는 이들의 싸움을 꾸준히, 가장 크게 전하겠습니다. 현장에서 뵙겠습니다.